명나라 말기, 서예와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남긴 인물인 조의광(赵宧光)은 《한산소담(寒山帚谈)》이라는 저술을 통해 붓과 글자의 관계, 예술과 인간의 내면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을 비유로 풀어낸 대표적인 문예평론가입니다. 특히 ‘용필(用笔)’과 ‘구조(结构)’라는 두 개념을 중심으로 서예의 본질을 설명한 구절은 오늘날 예술 철학에서도 빛나는 통찰로 읽힙니다.
1. 《한산소담》 속 대표 구절과 해석
凡用笔如聚材,结构如堂构。
用笔如树,结构如林。
用笔为体,结构为用。
用笔如貌,结构如容。
用笔为情,结构为性。
用笔如皮肤,结构如筋骨。
用笔如四肢百骸,结构如全体形貌。
붓을 쓰는 것은 재료를 모으는 것이고, 구조는 그것을 조합해 집을 짓는 것이다.
붓은 한 그루 나무요, 구조는 울창한 숲이다.
붓은 형체이고, 구조는 그것의 쓰임새이다.
붓은 얼굴의 생김새요, 구조는 전체적인 인상이다.
붓은 감정이요, 구조는 성격이다.
붓은 피부, 구조는 뼈대이다.
붓은 사지백해와 같고, 구조는 전체 몸의 형상과 같다.
이 문장은 각기 다른 비유를 통해 ‘붓의 움직임’과 ‘글자의 구조’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예술을 이루는지를 설명합니다. 아래는 주요 비유의 의미입니다.
- 붓은 나무, 구조는 숲이다 – 개별적 기교와 전체 구성의 통일
- 붓은 재료, 구조는 건축이다 – 재료와 설계의 관계처럼 예술도 균형과 조화가 필요
- 붓은 감정, 구조는 성격이다 – 순간의 감정과 평생의 인품이 조화되어야 예술이 완성
- 붓은 피부, 구조는 근골이다 – 외형과 내면이 함께 살아 있어야 진정한 작품

2. 조의광은 누구인가?
赵宧光(조의광, 자: 景昭)은 명나라 말기의 문예비평가이자 고문학자이며, 예술 철학자로도 평가받습니다. 그의 호는 한산(寒山)으로, 이를 따서 《한산소담》이라는 책을 남겼습니다.
그는 서예 이론뿐 아니라 문인화, 고문, 인물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식견을 남겼으며, 특히 다음과 같은 철학적 태도를 강조했습니다.
- 예술은 기교보다 정신성이 우선이다
- 문자는 마음의 발로이고, 필획은 인격의 외현이다
- 붓을 든 사람의 철학과 수양이 글씨에 배어야 한다
3. ‘용필’과 ‘구조’의 통합적 미학
조의광은 예술을 구성하는 두 축으로 ‘용필’과 ‘구조’를 설정하고, 이 두 가지가 어떻게 형(形)과 신(神), 외면과 내면을 통합하는지를 설명합니다.
- 용필(用笔) – 붓을 운용하는 방법. 즉흥성과 감정, 리듬, 생명력 등 순간적인 표현의 힘.
- 구조(结构) – 글자의 균형, 자간, 행간, 화면의 조화 등 설계된 구성 요소.
이 두 요소는 하나가 뛰어나도 다른 하나가 부족하면 완성도가 떨어집니다. 조의광은 이 둘이 반드시 유기적으로 균형을 이루어야 진정한 예술이 된다고 봤습니다.
4. 현대 창작자에게 주는 메시지
조의광의 사상은 단지 서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. 디자인, 글쓰기, 그림, 건축, 음악 등 모든 창작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.
- 감성과 이성의 균형 – 용필은 감성, 구조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, 창작은 이 둘의 대화를 요구합니다.
- 기술과 철학의 통합 – 기교는 필요하지만,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그것을 움직이는 철학과 정신입니다.
- 창작자의 인격이 반영된 예술 – 조의광은 글씨에서 사람의 인품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. 이는 어떤 형태의 창작이든 마찬가지입니다.
결론: 조의광, 붓으로 철학을 말한 사람
조의광은 예술을 기술이 아닌 철학으로 보았습니다. 그의 글은 시대를 초월하여 창작자에게 ‘자신의 감정과 사유를 예술로 구현하라’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. 《한산소담》은 비유로 가득 차 있지만, 그 안에는 인간과 예술, 내면과 외면, 기술과 정신을 꿰뚫는 정교한 관점이 녹아 있습니다. 예술을 하는 모든 이에게 반드시 한 번은 곱씹어야 할 고전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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